기리보이와의 만남은 항상 두근거렸다. 어떤 생각을 꺼내 놓을지, 어떤 반응을 보일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만나면 예측이 가능한데 기리보이는 조금 경계를 벗어나 있다. 그런데 기리보이의 입장에서는 꽤 억울할 것도 같았다.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하는 건데 말이다.
순수하고 불안정한 건 두근거리는 마음을 떠올리게 했다. 0개 국어라고 하는데 문법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기의 내면을 그때그때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.
어느 순간부터인가 기리보이와 이야기를 더 하고 싶고 자주 보고 싶어졌다. 필터 없이 보이는 진심들, 가공되지 않은 원석들을 보며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.
우리에게 기리보이는 천연자원 그 자체였다. 워낙 내면의 다양한 조각들이 튀어나와 돌아다니고 있어서 골라서 줍기 바빴다. 기리보이도 우리도 더 보여주고 만들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금방 파트2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.
사진 작업을 할 때 기리보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물건들을 보여주고, 꺼내고, 정리하고, 없어진 걸 아쉬워하고, 예쁘게 찍히게 연출하고, 만지고, 왜 중요한지 이야기했다. 다 담지 못했지만 그의 물건들이 멋지게 기록되어 같이 꽤나 만족했다.
책은 기리보이의 순수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들로 채웠다. 각 페이지에 펼쳐 놓은 그의 생각과 내면의 조각들이 가끔 내 안에 걸어놓은 필터들을 걷어내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.